노력파/넉살좋은/호승심이 있는/올곧은
뱀을 흉내내는 까마귀.
혀를 놀리지 못하는 것은 아니나 뱀의 혀만 못하고, 머리가 제법 굴러가긴 하지만 또 이건 여우의 뇌만 못하다. 어딘가에 써먹기에 부족한 건 아니다. 하지만 그럴 바에는 차라리 이것보다 더 나은 것을 사용하는 게 좋지 않겠는가? 그러니까 부족한 건 없지만 그렇다고 특출나게 잘난 것이 없는, 잘 쳐봐야 B급 언저리. 그건 에티엔의 디움 능력치의 등급을 의미하는 게 아니라, 전반적인 에티엔 카셀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였다.
애써 블록버스터를 흉내내지만 싸구려티를 채 지우지 못한 B급 영화. 킬링타임으론 볼만하지만 뒤돌아보면 내용을 잊게 되는 그런 류의. 하지만 그렇게 주머니에 넣어도 티조차 나지 않을 이빠진 송곳인 에티엔을 다시금 사람들이 돌아보게 만든 것은, 노체에 큰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노체아의 부대원으로 만든 것은 뼈와 살을 깎는 에티엔의 노력이었다. 카셀 가문의 부족한 아들로서 그 자리에서 안주한 채로 편하게 살 수 있었을텐데도, 에티엔은 스스로 그곳을 나오는 것을 선택했다. 에티엔은 늘 목표를 올곧은 눈으로 바라보고 그곳으로 가기 위해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태생이 B급인 자가 노체의 이피스 중에서도 정예인 자들 사이에 있을 때 필수적으로 가져야하는 것은 능청스러움이다. 제게 잊을만하면 날아오는 날이 선 멸시를 전부 제 몸으로 받아내면 도저히 두 발로 이곳에서 제대로 서있을 수 없었기에. 날아오는 칼을 손끝으로 툭 치면 비록 손 끝은 베여 쓰라리더라도 큰 상처는 면할 수 있었으니까. 노력이 에티엔을 노체아에 데려다준 신발이라면 에티엔의 넉살 좋은 성격은 에티엔을 보호하는 방패.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에티엔이 이피스 특유의 자존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에티엔의 붉은 눈 아래에는 가끔 채 열기를 숨기지 않은 호승심이 드러난다. B급이라고 해서 노체아 소속이 아닌 것은 아니다. 에티엔은 긍지높은 노체아의 멤버이고, 상대의 목을 겨눌 무기 정도는 가지고 있다. 이것은 단순히 전투나 능력의 강약비교뿐만이 아니라, 카드게임이나 단순한 내기까지 포함된다. 가끔은 유치하다 싶을 정도로 매달리긴 하지만, 그 호승심이 지금의 에티엔을 만들었다는 것을 부정하지는 못할 것이다. 제게 다가오는 자에게 가끔 드러내곤 하는 호승심은 에티엔이 상대에게 겨누는 검이다.
툭하면 시야를 잃고 제가 어디있는지조차 잊는 에티엔이 늘 마지막엔 제대로 제가 가야할 길을 찾아가는 것은 에티엔의 올곧다라고 표현할 수밖에 없는 꺾이지 않는 심지덕분이다. 휘어질지언정 끝까지 꺾이지 않는다. 누구는 그것을 에티엔의 신념이라 부르고, 누구는 그것이 에티엔의 정의라고 말한다. 신념이라는 것은 타인에게 함부로 내보여선 안 되는 것이라, 에티엔이 제 속에 품고있는 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알 수 없지만 적어도 그것이 에티엔이 기준으로 삼아 움직이는 나침반이라는 것은 알 수 있다.
에티엔은 뱀의 혀를 타고나지 않았다. 그렇다고 여우의 뇌를 가진 것도 아니었다.
약 150년 전, 전쟁으로 멸망하기 전의 세계에서 까마귀는 흉조(凶鳥)로 불렸다고 했다. 카셀 가에서 낮은 등급의 이피스로 태어난 에티엔은 제 가문의 흉조(凶兆)나 마찬가지였다. 까마귀로 태어나는 것은 에티엔이 원하던 것이 아니었다. 그리고 까마귀는 절대로 뱀이 될 수 없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이 시대가 원하는 것이 뱀이었으니, 최선을 다해 흉내내주는 수밖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