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olie a deux
2020. 12. 04 Gilber Allen
*Trigger Warning. 가정폭력에 대한 묘사 없는 언급 존재.
*
호그와트 재학 당시 사용했던 모든 ‘마법사’ 물건들을 호그와트에 반납하고 나니 길버트 앨런은 제 7년간의 마법사 생활을 작은 트렁크 가방 하나에 전부 담을 수 있었다. 졸업식 당시 연회장에서 벌어졌던 작은 소동―그걸 작은 소동이라 부를 수 있나? 하지만 더는 그쪽으로 고개를 돌릴 생각조차 없는 길버트 앨런에게 마법사 세계의 자기들만의 법이나 규칙 따위는 전혀 신경 쓸 것이 아니었기에 그건 그저 단순히 졸업 전에 마주친 작은 소동 정도였다.―마저 누군가 보존 마법을 걸었는지 형태조차 무너지지 않는 노란색 곰젤리, 건들면 여전히 부드럽게 방향을 트는 자그마한 님부스20, 세상에서 제일 필요 없는 마법 신발 정도로 정리가 되었으니까.
그렇다고 해서 그 7년이 그 정도로 가벼웠다는 것은 아니어서, 킹스크로스역에서 내린 길버트는 아까까지 걸치고 있던 그리핀도르 망토를 가득 차서 곧 터질 것만 같은 트렁크 가방에 넣는 것을 포기하고 제 팔에 걸친 채 에버릿 스트릿으로 걸었다.
기어코 이리 끝이 났다 싶었다. 7년은 길었지. 암, 길고말고. 길버트가 작게 중얼거렸다. 이런 멍청한 비유는 들고 싶지 않았지만 정말로 재투성이에게 요정이 걸어준 마법이 풀린 거라고. 변신술을 그리 연습했는데도 불구하고 제가 가지고 있던 마법은 저를 왕자님으로 만들어주지 않았고, 머글인 아버지를 개구리로 만드는 것은 국제 비밀법령에 위반되는 행위이며, 그렇게 많은 마법 물품을 호그와트에 두고 왔는데도 이 유리냄비가 네 것이냐며 따라오는 왕자님은 없었다.
그러니까 충분했다고, 이 정도면. 답지 않게 맑은 런던의 하늘을 바라보며 길버트가 실소했다. 제가 유리구두를 신고 연회장에서 탭댄스를 춘 것은 아니지만 신데렐라가 무도회장에서 왕자님과 함께 춤을 추었던 것마냥―아, 비슷한 건 했다. 프롬에서 ‘그’ 저스틴 체이스의 프롬 파트너로 함께 춤을 추었으니까. 저스틴 체이스는 입의 흉터를 제외하면 왕자나 다름없는 외모였고, 저는 어딜 봐도 재투성이나 다름없으니, 그것도 제법 신데렐라가 왕자님과 무도회장에서 춤을 춘 것과 비슷한 추억이 아니겠는가.―저도 비슷한 7년짜리 추억을 안고 살게 되었으니, 그 정도면 꽤나 괜찮은 것 아니었냐며 길버트는 자신을 납득시켰다. 아버지에게 학대받던 11살짜리 꼬맹이가 그 당시에 아버지 눈도 못 마주치면서 마법학교로 가겠다고 용기를 쥐어짜내 대답했던 결과치고는.
내일을 기대하는 것은 사치다. 길버트 앨런은 태어나길 영민하게 태어나서 그 누구보다도 빠르게 그걸 배웠다. 어린아이가 늘상 가지게 되는 미래에 대한 기대를 길버트는 단 한번도 품은 적이 없다. 기대를 갖지 못하는 삶은 얼마나 끔찍하고 슬픈지. 이제 충분히 익숙해졌다고 생각했는데도 가끔 주제도 모르고 고개를 쳐드는 희망은 늘 저를 다시금 벗어날 수 없는 짙고 깊은 수면 아래로 끌고 내려가곤 했다.
그러니 이번에도 기대조차 하지 않는 것이 나았다. 졸업식이 끝남과 동시에 길버트 앨런의 시간은 끝이 났다는 거다. 길버트는 그 7년간의 삶을 그렇게 납득시키지 않으면 더는 버틸 수가 없을 것만 같았다.
그곳의 삶을 더 누리는 것은 어불성설이라고. 분명 그것은 저를 배신하고 말 것이다. 17년간 반복해왔던 쳇바퀴 같은 삶은 관성이라 부를만한 것이어서 행복했던 학교생활, 즐거웠던 친구들과의 시간, 그리고 제 옆에는 늘 ……가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길버트는 다시금 익숙한 곳에 고개를 돌리게 되는 것이다. 어차피 행복했던 7년간의 삶 속에서도 제가 있을 곳은 여기라는 듯 늘 악몽이 저를 지배했으니까.
그렇기에 길버트 앨런은 자신의 좁고 아늑한 지옥으로 돌아가는 것을 택했다.
템즈강을 제 왼쪽에 낀 채 걷는다. 빗자루를 타고 나는 것보다는 역시 부족하지만 이 정도의 감각은 나쁘지 않다. 태양 빛이 내리쬐는 템즈강은 금빛으로 반짝거려 제법 볼만하니까. 한 손에 쥐고 있는 트렁크가 가볍게 흔들리면, 제가 밟고 있는 산책로 위에도 그림자가 진다. 그림자는 제 색이 다른 두 눈동자가 보이지 않아서 좋다.
그 모든 풍경에도 불구하고 움직이는 발걸음은 느릿하고, 무겁다.
이윽고 깔끔하게 잘 관리되어 있던 블록들은 발을 앞으로 내디딜 때마다 점점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아까까지는 분명 산책을 나온 런던 시민들의 가벼운 기분 좋은 잡담이 주로 들렸던 것 같은데, 지금에서 귀에 들리는 것은 저를 위협하는 슬랭에 가깝다. 오늘의 런던이 맑다고 했던가. 제가 후비진 골목을 돌 때마다 태양 빛이 반이 줄어들고, 다시 한번 반이, 그리고 또 반이. 맑은 하늘, 런던을 수놓던 알록달록한 풍경은 어느새 사라지고 무겁게 가라앉은 듯한 잿빛이 저를 반긴다. 익숙한 풍경이다.
어느 정도 걸었더라. 어느새 노을이 져 태양은 템즈강 아래로 떨어지고, 붉고 푸르고 보랏빛을 내는 하늘에는 희미하게 달이 보인다.
달은 제가 하루를 버텼다는 증거고, 태양은 다시 끔찍한 하루가 시작한다는 신호다.
그리고 오늘도 달이 떴다.
이제 정말로 TIME OUT이다. 제가 가지고 있던 타이머의 시간이 다 닳아버린 셈이다.
이윽고 길버트 앨런은 발을 멈췄다.
유리구두를 들고 제집 문 앞에 서 있는 왕자님은 없었다. 길버트 앨런은 그 사실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뼛속까지.
이제 재투성이 현실로 돌아갈 시간이다.
여기가 에버릿 스트릿의 끝이라 가리키는 표지판은 낡디 닳아서 본 색이 무엇이었는지도 구분하기 어렵다. 그리고 그 옆, 베이지색이었을 문은 페인트가 다 벗겨져 제 원래의 나무의 색을 보인다. 손때가 타 반들반들한 손잡이를 붙잡는다. 손잡이를 돌리면 분명 끼익, 하고 기름칠을 하지 않은 소리가 울리리라. 그것은 이제 제가 7년간 기대왔던 세상이 무너진다는 신호다.
“길.”
하지만 그 대신, 익숙한 낮고 부드러운 미성이 등 뒤에서 작게 들렸다.
“내가 조금 늦었지.”
돌아보면 무언가가 깨져버릴 것 같아서, 뒤돌지를 못했다.
“이쪽 지리는 잘 몰라서.”
기어코 한마디를 더 듣고 나서야 길버트 앨런은 뒤를 돌아보았다. 금이 가는 소리가 제 귓가에 울렸다.
내일이 왔는데도 세상은 무너지지 않았다. 신기하게도.
*
우리 퀴디치나 보러 갈까. 프로 경기는 처음이지, 길? 네가 보면 반할지도 몰라. 길이 퀴디치 선수가 된다고 하면 어쩌지?
말도 안 되는 소리 마, 저스틴. 제발.